행사탑방

중시조 영양군1세 시제 참석 &영천이씨 문화유적 탐방

사라골 2023. 2. 27. 15:07

매년 음력 10월10일은 영천이씨 중시조 휘 대영 선조 시제를 올리는 날이다
지난31일 감사공파 회장으로 부터 시제 연락을 받고 창원 거주 종손께 함께 갈것을 제의하니
흔쾌히 승락하며 우리 문중에서 모처럼 2명이 시제에 참석하였다

대문중 행사는 처음 참석해 보니 참석자는 소문중별 연노하신 어른들이었으며
의상은 양복이 아니고 모든분들이 도포제복을 입고 있었다

시제의식은 일반제례의식과 비슷하나 좀 더 유교의례식에 근접된 방식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마우리까지 포스팅하면서 좋은 경험을 했다

시제를 마치고 현장에서 제수음식으로 간단한 음복을 하고난 후
종친이 운영하는 영천시 어느 식당으로 이동하여 오찬을 즐기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귀가길에 감사공파 회장님의 안내로 영천이씨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며
나의뿌리에 대해 뿌듯하게 느낌받는 하루를 보냈다

주요유적지
석현제사, 영양군 묘소, 시조공 사제단,
숭렬당공원, 이대전유허비, 문중신축건물


👉 석현재사(石峴齊舍)
고려 신호위대 장군이며 영양군에 봉해진 문정 공의 봉향소로 1859년 철종(10년) 서원으로 창건 하였으나
1868년(고종 5년) 서원 철폐령으로 1875년 고종(12년) 복원하여 제사로 사용하고 있다

5칸 규모의 산형 대문과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5칸 측면 1칸 맞베기 기와집이며 3칸 규모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 한칸식을 연접 시킨 후 정면과 양측면에는 퇴을 돌렸다

제사 뒤에는 영천 이씨 시조 고려 평장사 고울군 이문한, 고려 통일대전 호국실에 배양되신
상장군 익양군 이극인, 고려 좌명공신 영양군 이대영 삼현을 봉안하는 사당인 존덕사가 있다

소재지: 영천시 야사 오미길 113 - 41



👉 영양공 묘소 시제 거행
참석자 상견례
상견례후 좌담
시제전 산신제 거행
시제 거행순서를 알리면서 시제 시작
시제순서
제수상차림
집사
감사공파회장 종헌례
음복
재생
강신,참신 거행
재생
독축 거행
재생
초헌례
재생


👉 영천이씨 시조공 제단소

고려초(高麗初)에 득성(得姓)한 영천이씨는 이 지방 사대토성 가운데 한 성씨로 시조공은 고려 평장사 고울군 휘 문한(諱 文漢)이다. 본 제단소는 시조공(始祖公)과 이세(二世), 삼세(三世), 사세(四世), 오세(五世) 오위(五位)를 모시고 있다.

제단소의 형국은 보현산의 중출맥(重出脈)이 시루봉을 지나 다시 남으로 하강하여 영천의오미동 천왕산록 남천과 북천의 합수 머리에 형성된 봉황 귀소형(鳳凰歸巢形)으로 뵤좌유향(卯坐酉向)이다. 천여년의 장구한 세월과 수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묘소를 실전하였는바 서기 2005년 을유 15만 후손들의 뜻을 모아 제단소를 건립하고 음력 3월 10일에 제향을 드리고 있다.


* 소재지 : 영천시 오미동 산 121번지 천황산록
* 면적 : 1정보(3000坪) 9,900평방 미터
영천이씨 시조공 제단소 표지석
헌성비 전문(獻誠碑 前文)
우리 영천이씨 일족은 시조공부터 5세조까지의 실묘로 한을 품고 살아왔다. 다행히 설단(設壇)을 위한 총의(總意)가 결집(結集)되자 특지가(特志家)가 앞을 서고 종중이 뒤를 받치니 대역사(大役事)는 완공되었다. 참으로 경사(敬事)스러운 일. 아름다운 천왕산록(天王山麓)에 제단소는 장엄(莊嚴)하고 향화(香火)는 이어져 영세불절(永世不絶)하리라.
회고(回顧)하면 헌성금 모금에 착수(着手)한지 불과 4개월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의 노소제종(老少諸宗)이 호응(呼應)하고 파문중(派門中)과 여러 단체들이 동참하니 그 열화(烈火)같은 성원은 놀랍기만 하다. 이제 조령(祖靈)은 길이 안식(安息)하실 것이며, 후손들은 만세(萬世)토록 번창(繁昌)하리라. 이에 헌성(獻誠)하신 종친제위(宗親諸位)의 고마운 뜻을 기리고자 이 비(碑)를 세운다.

서기 2005年 乙酉 陽 十月 十五日(서기 2005년 을유 양 10월 15일)
始祖公 設壇推進委員會(시조공 설단추진위원회)
주자장에서 헌성비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제단소가 있다
좌우측에 문관석과 무관석, 해태석 비치
중앙 2곳은 시조공제단과 비석이며
좌측으로 부터 2세,3세,4세, 5세 제단임
고려 평장사 고울군 휘 문한 제단


휘(諱) 문한(文漢)은 고려 평장사며 고려의 대관이요, 영천 지방의 호족이라 상단 연화갓은 예부터 임금이나 나라에서 하나뿐인 사람에게 씌워진 모양이다. 일찍이 실묘하여 영천시 오미동 산 121번지에 차위 4세손과 같이 설단하여 매년 3월 15일(음(陰)) 제를 올린다.

* 제단(祭壇) :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단은 2단 받침 6.5척 연화갓, 상석은 1단 받침 7.5척 x 5.5척 향로석


제단비명(祭壇碑銘)

이수삼산(二水三山) 산자수명(山紫水明) 그 이름 영천(永川)인데 이씨(李氏)가 토착(土着)하여 많은 인재배출(人才輩出) 했네 거룩한 이씨시조(李氏始祖) 이 땅에서 굴기(崛起)하여 평장사(平章事) 높은 벼슬 훌륭히 구실하고 빛나는 그 이름 고울군(高鬱君)이 되셨도다 익양영양(益陽永陽) 뒤를 이어 가문(家門)이 번창(繁昌)하니 두터운 그 터전이 이에 더 넓혀졌네 뿌리 깊은 나무 꽃 좋고 여름하여 심인후택(深人厚澤)으로 운잉(雲仍)에 복(福) 내리니 자자손손(子子孫孫) 대(代) 이어 나라안에 널리 있네 천년(千年)의 풍상세월(風霜歲月) 유구(悠久)한 역사(歷史)속에 충훈의열(忠勳義烈) 문장도덕 사승(文章道德 史乘)에 빛을 내니 그 업적(業績) 그 성화일국(聲華一國)의 벌족(閥族)이라 후손(後孫)들의 보본추효(報本追孝) 정성(精誠)도 놀라울사 외외(巍巍)한 존덕사(尊德祠)에 삼현(三賢)을 모셨지만 시조(始祖)의 드높은 덕(德) 어찌 이로 그칠손가 원근(遠近)의 종원(宗員)들이 한결같이 뜻 모으고 위선(衛先) 위해 많은 연자특지가(捐貲特志家)가 앞에서서 제단(祭壇)을 따로 모아 숭비(崇碑)를 세워두고 해마다 정성(精誠)들여 향화(香火)를 받들지니 재천(在天)하신 영령(英靈)께서 굽어 살피시어 신마고륜(神馬尻輪)으로 여기 척강(陟降)하시면서 즐거운 흠향(歆饗)으로 천추만세(千秋萬歲) 누리소서


서기 2005年 乙酉 陽 十月 十五日 (서기 2005년 을유 양 십월 십오일)
大韓民國 學術院 會員 成均館大學 名譽敎授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성균관대학 명예교수)
文學博士 驪州 李 佑 成 謹撰 (문학박사 여주 이 우 성 근찬)



👉 숭렬공원
숭렬당은 위양공 이순몽 장군이 기거했던 집으로, 숭렬 공원은 이순몽장군 업적을 기리고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문화시설로서 친근하게 찾을 수 있도록 숭렬당 주변에 조성한 공원이다

이순몽(李順蒙 1386~1449) : 본관은 영천(永川), 조선 태종때에 병조판서를 지낸, 영양군(永陽君) 응(膺)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세종초에 우군절도사,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일찍이 총제로 쓰시마를 정벌할 때 동료들이 다 패했으나 장군 홀로 부하 전원을 영솔하고 돌아 왔으며, 다시 파저강(婆猪江)에서 싸워 대승하여 세종대왕의 총애가 두터워 사람들이 복장군(福將軍)이라 하였다.

소재지 : 영천시 성내동42
공원에는 앞쪽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 자당 변 한국대부인 영천이씨 추모비'와
안쪽에 숭렬당의 주인인 우군 우절제사 이순몽 장군 개선 송덕시비가 자리해 있다
이순뭉장군 송덕시비
숭렬당 입구 정면
숭렬당은 보물 제521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서 보호받고 있으며 조선세종 15년(1433년)에 건립된 중국식(中國式) 건물로서 그 구조와 형태가 아름답고 특이하다. 이 건물은 세종원년(1419) 쓰시마 정벌과 야인토벌 등에 혁혁한 공적을 남겨 일명 복장군(福將軍)이라 불리었던 명장(名將) 위양공 이순몽(威襄公 李順蒙)장군이 평소 기거했던 집이다 .
현재는 장군의 위패를 받들고 봄 ·가을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



👉 이보흠(호:대전) 유허비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조선 시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처형당한 이보흠(李甫欽)의 유허비.

이보흠[1397~1457]의 본관은 영천,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다. 1429년 식년문과에 급제해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가 된 후 1457년 순흥 부사(順興府使)로 재임 중 순흥에 유배와 있던 금성 대군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었다.
평안도 박천 지역으로 유배간 후 그곳에서 죽임을 당하고 이보흠의 집안도 몰락했다. 1738년(영조 14)에 단종과 함께 사면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91년 충장(忠莊)의 시호를 추증하고, 장릉의 충신단(忠臣壇)에 제향되었다. 이보흠이 저술한 『대전실기(大田實記)』가 전해진다.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에 있다. 유허비에는 이보흠의 자취와 공적 등 그의 행적을 적고 있다.

소재지 : 영천시 대전동618


👉 영천이씨 영양군 후예 문중 건물
현재 신축중인 건물로 준공이 완료되면 3층은 영양군 후예 종친회 사무실로 운영계획